두륜산(頭輪山) 두륜봉(頭輪峰)2 (2014.04.19)

2014. 4. 30. 18:5103.워킹산행

 

 

 

 

두륜산(頭輪山) 두륜봉(頭輪峰)2

 

 소재지 :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ㆍ삼산면ㆍ북일면에 걸쳐있는 도립공원

 산행일 : 2014년 04월 19일. 토요일

산행코스 : 오소재약수터->오심재->노승봉->가련봉->만일재->두륜봉->진불암입구->표충사->대흥사 일주문->주차장

산행시간 : 4시간 (샤방샤방)

  날씨 : 맑음 (해남 최저:10.4℃ 최고:16.6℃)

 

(경인웰빙 두륜산.청산도 1박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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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頭輪山) 두륜봉(頭輪峰)

 

두륜산(頭輪山)도립공원은 한반도의 마지막 끝에 우뚝 선 두륜산 일대에 지정된 자영공원으로

두륜산(頭輪山)은 해남군 삼산면 현산면, 북평면, 옥천면, 등 5개면이 인접하고 있다.
두륜산(頭輪山)은 상록활엽수와 온대성 낙엽활엽수들이 숲을 이루고 식물분포학상 중요한 가지를 지니고 있어 1979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도립공원 안에는 대흥사를 비롯하여 여러 암자 등 문화유적이 분포하고 있으며

총 면적은 33,390제곱km로 두륜산 대흥사 일원은 국가문화재 사적 508호 및 명승 66호로 지정되어 있다. 

두륜산(頭輪山)에는 가련봉(迦蓮峰, 703m)을 비롯하여, 두륜봉(頭輪峰, 630m)ㆍ고계봉(高?峰, 638m)ㆍ노승봉(능허대 685m)ㆍ
도솔봉(兜率峰, 672m)ㆍ혈망봉(穴望峰, 379m)ㆍ향로봉(香爐峰, 469m)ㆍ연화봉(蓮花峰, 613m)8개의 봉우리에 아홉 골짜기가 있고
여기에 아홉 개의 다리가 있어서 이를 구곡구교라 부른다.
8개의 봉우리는 둥근 원형으로 마치 거인이 남해를 향해 오른손을 모아든 듯한 형상이다.
(오른손을 가지런히 펴고 엄지를 집게손가락에 붙인 다음 손가락 끝을 당겨 오목하게 물을 받들듯 만들면 영락없이 두륜산의 형세가 된다.)

 

원래 두륜산대둔사(大芚寺)의 이름을 따서 대둔산이라 칭하다가 대둔사가 대흥사(大興寺)로 바뀌자 대흥산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대둔산의 명칭은 산이란 뜻의 '듬'과 크다는 뜻의 관형어 '한'이 붙어 한듬->대듬->대둔으로 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때문에 현재의 대흥사는 근대이전에는 대둔사, 또는 한듬절로 불리기도 했다.


대둔사지에 의하면 중국 곤륜산백두산 자를 따서 두륜산이라 썼다고 한다.
두륜산은 북서쪽으로 경사가 완만하고 경관이 수려하며 코스가 험하지 않아 2~3시간정도면 정상인 가련봉에 오를 수 있다.
또한 9개의 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많은 물과 함께 두륜산 입구에서 대흥사까지 10리숲길의 장춘동계곡은 동백나무숲이 유명하여

왕벚나무 (천연기념물 173호)가 자생하고 있으며,
그 외 후박나무 등 다양한 상록활엽수림의 식물군이 분포하고 있다. 

 

 [해남문화관광 제공]

 

 

산행코스
1.주차장→대둔사→북암→정상→구름다리→진불암→대둔사→주차장 (9km,4시간)
2.장춘리→오도치→혈망봉→연화봉→두륜봉→가련봉→노승봉→고계봉→장춘리(12Km)
3.주차장→대둔사→북암→만일암터→헬기장→두륜봉→진불암→대둔사→주차장 (7Km,약 3시간)
4.장춘리→대둔사→만일암터→두륜봉→가련봉→노승봉(능허대)→북암→대둔사→장춘리
5.장춘리→대둔사→만일암터→안부→두륜봉→위봉→쇠노재(산행 후 도분지를 빠져 나올 수 있는 코스)
6.주차장→대둔사→일지암→천년수→헬기장→가련봉(정상)→북암→대둔사→주차장(8km,3시간 30분)
7.
대둔사→만일암터→두륜봉→노승봉→가련봉→북암→대둔사→(3시간 20분)→

진불암→두륜봉→만일암터→북암→대흥사→장춘리(9km, 4시간)
8.
대흥사입구 주차장→(1km 15분)→대둔사→(1.5km 40분)→북암→(1.5km 40분)→

정상→(1.2km 30분)→구름다리→(2.8km 40분)→표충사→(1.2km15분)→주차장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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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흥사(大興寺) 연혁

『대둔사지』에 의하면 고려 후기의 천태종 소속 고승인 진정국사(眞靜國師) 천책스님의 주석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천책 스님이 대흥사 북암(北庵)에 한동안 주석하였으며, 『대둔사지』를 편찬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님이 사용하던 발우가 이 곳에 전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천책스님이 대흥사 인근의 백련사(白蓮寺, 현 대흥사의 말사)에서 출가하고 그 곳에서 장기간 주석하였다는 사실을 감안해 본다면,
이 기록은 상당한 타당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절 앞마당에 신암(信菴), 사은(思隱), 성유(性柔) 등 세 분 고승의 부도가 세워져 있다는 기록이 실려있는데,
이들 고승도 역시 고려시대에 활동했던 스님들로 대흥사의 장구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대흥사의 위상이 크게 부각된 시점은 서산대사의 의발(衣鉢)이 이 곳 대흥사에 전해지고 조정과 불교계에서 모두 대흥사를 중시하기 시작했던 조선중기 이후부터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서산대사의 의발이 전해진 이후 대흥사에서는 13 대종사와 13 대강사가 계속 배출되어 조선 불교계를 이끌어왔으며,
조선의 조정에서는 표충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므로써 호국정신의 근원지와도 같은 위상을 세우게되었다.
이러한 대흥사는 일제강점기에 시행된 30본말사법 제도 아래에서 44개의 사암을 관장하는 본사로 지정되었다가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22교구 본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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